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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e 2020.12.31 23:59

문득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혹은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우리 사이에 '진지한 대화'라는게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항상 웹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로의 사소한 일들은 이미 다 알고있고,
그러니 만나도 겪은일들에 대해 농담따먹기나 하는데서 그치게 되더라구요.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된걸까요.
자신이 하고 있는 게임, 응원하는 팀의 야구스코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예쁜 여자, 술 ...
하루하루 그냥 현재 상황과 뉴스에 오르내리는 조작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의 반복.

인스턴트 식품처럼 순식간에 조리되서 허겁지겁 뱃속으로 들어가는 정보들은 순식간에 소화되어
외부로 배출되어 버리고, 결국 우리에게 남은것은 망각과 빈껍데기뿐.

오히려 이런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귀찮다는 이유,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눈과 귀를 닫아버리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결국 껍데기조차 남지 않는 사람이 될테니까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시작해 볼까 합니다.
진지한 대화, 누구라도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덧붙여 금일부로 다소의 용도 추가가 있습니다.
역사, 종교, 인문, 철학 등에 대한 내용도 다룰 예정입니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부분이나 더 알려주실 분들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단 여기에 쓰여진 글들은 제가 직접 정리한 내용이므로 퍼가시면 출처정도는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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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결여


1. 서 론

     인간이 삶을 영유하기 위한 주요 3요소 의식주 중 식食은 어떤 민족의 지리적 특성, 성향과 사상, 시대적 상황 등에 따라 변화하면서 한편으론 민족성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이다. 김치로 대표되는 한국이나 스시로 대표되는 일본처럼 특정음식이 나라를 대표하게 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이유로 인해 김치 같은 저장음식과 회와 쌀밥의 결합이라는 간편음식이 발달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도 이와 같다.
     중국은 위의 예시처럼 ‘중국’하면 바로 딱 하고 떠올릴 수 있는 음식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이는 러시아와 캐나다의 뒤를 이은 세계 제 3위의 광활한 영토는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품고 있고, 이런 지역성에 따라 각 지방별로 요리 문화가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황하유역을 대표하고 맛이 진하고 면류가 발달한 북경요리, 양자강과 바다를 함께 끼고 풍부한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는 상해요리, 외국과의 교류가 잦아 전통과 국제적인 특성이 조화된 광동요리, 더위와 추위가 심해 향신료를 많이 써 맵기로 유명한 사천요리와 같이 중국을 대표하는 사대요리 외에도 산동, 강소, 동북, 복건, 산서, 운남 등 각 성省 이름이 붙은 요리 분류가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사실 이것이 중국음식 문화의 ‘특색’ 그 자체이다. 중국은 대다수의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또 길고 긴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지배층이 한족이었다가 북방유목민족이었다가 다시 한족이 되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겪어왔다. 음식문화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유입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역사 속에 발달해 왔다. 발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키워드가 바로 중화中華이다. 그래서 각 성 별로 이름이 나눠진 채로 지방색을 강하게 띄어 얼핏 보면 지방요리 간에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중화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포용 흡수되어 있다. 그야말로 ‘중국’다운 음식문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음식문화에 대한 접근은, 중국음식문화가 지닌 고유한 전통의 이해를 통한 현재의 중국을 읽기 위함이면서 동시에 지속되는 문화변동과정 속에서도 나름의 수용?적용하는 중국인들의 모습 속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 위함이다. 현재,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치름으로서 대외적인 인식과 자국 내의 변혁을 동시에 신경써야하는 중국은 다시금 커다란 전환점을 돌고 있다. 위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하여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변화하는 중국음식문화에 대한 연구는 중국의 현재상과 변화하는 미래상을 비추는 거울이자, 나아가 세계화世界化와 중화中華의 접점을 찾는 중국을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가. 중국인들이 음식을 바라보는 시점
     중국은 고대로부터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은제국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해독된 갑골문을 토대로 알 수 있는 것은 고작 동물과 식물의 이름1)뿐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지식으로 유추하기엔 매우 범위가 제한된다. 그래서 비교적 문헌이 남아있는 춘추시대의 자료인 『시경』2)과 『춘추좌씨전』을 통해 한인들의 식생활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고대 중국인들이 음식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기록을 토대로 고대 중국인들이 섭취한 동물은 소, 말, 양, 돼지, 개 등의 일반적 가축과 토끼, 들소, 사슴, 멧돼지 등의 들짐승, 다양한 조류, 생선까지 가리지 않았다. 식물류로는 수수, 기장, 보리, 밀, 부추, 오이, 생강 등을 먹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들이 이때 섭취한 음식들보다 요리하는 조리법에 관심을 두어야 할 듯하다. 먼저 불을 쓰지 않은 냉식으로는 육류를 얇게 썰어 초를 곁들인 회(膾)와 채소를 소금에 절인 저(?)가 있다. 이것은 오늘날 육회와 샐러드 혹은 장아찌에 해당하는 훌륭한 요리이다. 불을 쓰는 화식에 대한 문구는 유독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직접 불에 굽는 번(燔), 꼬치에 꿰어 굽는 적(炙), 진흙으로 싸서 굽는 포(?), 찌는 증(蒸), 삶는 자(煮)와 살아 있는 채로 삶는 팽(烹) 등 같은 재료도 조리법을 달리하여 여러 가지 맛을 즐겼다. 동시대의 그리스 호머의 『일리아드』와『오디세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리법이 굽는 것뿐이라고 전해진 시대와 비교하면 얼마나 중국인들이 맛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맛을 위한 조리기술의 발달은 주방선생이라는 ‘추스(廚師)’ 즉, 요리 전문가를 만들어 냈다.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황제에 있었기 때문에 무한정으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었다. 춘추시대 제(薺)나라엔 역아(易牙)란 인물이 있었는데 환공의 요리사임에도 국정을 담당했다. 앞선 시대 은나라엔 시조 탕왕의 모신인 이윤 또한 요리사 출신이었다. 이런 주방선생들의 정계진출은 중국인이 고대로부터 요리사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 외에도 중국은 오래전부터 요리사의 역할분담을 통해 전문성을 띄었다.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주례(周禮)에 의하면 천자의 음식을 담당하는 관리를 선부(膳夫), 포인(?人,) 내옹(內饔), 외옹(外饔), 형인(亨人), 석인(?人)3) 등으로 선별을 통한 분업화를 꾀함으로써 분야별 전문가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형태로 꾸준히 발달해온 분업의 전통은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을 띄게 된다. 화로담당, 도마담당, 냉채남당, 찜통담당, 밥솥담당, 면담당으로 나눠지는 형태는 중국요리뿐만이 아닌 세계 대형 요리점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분업시스템이다. 인간의 문명이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을 때 음식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효율적인 분업시스템이 차용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중국인들이 음식에 대해 가지는 감정과 오늘날 중국요리에 대한 그들의 자긍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현대 중국인들의 식문화
     중화인문공화국 성립 후 중국인들은 배급제도 아래 열악한 식생활을 해왔다. 특히 1966년대부터 1976년대까지 마오쩌둥(毛澤東)의 지도아래 시행된 문화혁명은 중국 민중의 생활수준을 크게 저하시켰다. 공산주의의 핵심사상과 궤를 같이 하는 평균주의적 사상의 제도화는 기업과 노동자의 일률적 이익 분배를 보장했고, ‘가족 구성원의 수=식량배급의 증가’라는 공식은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평균주의 분배원칙에 의해 가족 수에 따라 식량 배급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인구는 증가하고, 민중 전체의 생활수준은 하락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중국인들의 식탁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이후이다. 자원배분 영역이 현저히 축소되고 시장중심의 경제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기존보다 나아진 식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혜택은 중국전체 인구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개방의 길에 먼저 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었다. 권력과 자본을 동시에 쥔 자본가들은 호의호식하며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던 호사를 누린다. 그 소수에 끼지 못한 나머지 절대 다수는 내심 그들을 부러워하지만 내색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 속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제도적 가치관이 강요하던 평균주의는 사라졌지만, 그들 마음속엔 여전히 평균주의적 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와 사영기업가의 폭팔적인 양적 성장을 통한 고도 경제 성장은 최소 생활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줌으로서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끼니를 거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식탁은 예전에 비해 풍성해졌다. 더불어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식의주(食衣住) 관념을 바탕으로 음식산업은 크게 발달하게 되어 건강식, 균형식 등 날로 다원화된 식생활로 변화하고 있다.
     성장은 여성 노동자의 비율을 대폭 증가시켰고 이로 인해 맞벌이 가정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외식문화가 일반화되는 현상으로 이어지는데, 시간적 요인?편의성 등의 이유로 많은 중국인들이 아침과 점심을 외식으로 해결한다. 아침은 만두, 튀김빵, 국수, 쌀죽과 같은 간편식으로 해결하고 점심은 사무실 근처의 식당에서 쌀밥을 사먹는다. 다만 음식점에 따른 확연한 계급과 격차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하층 노동자와 관리자, 사무직 등 사회 각 계층이 가는 음식점이 다르다.
     외식의 빈도도 남쪽과 북쪽의 차이가 있는 편이다. 비교적 문호개방이 빠른 상하이인들이 베이징인보다 외식이 잦다. 상하이인들은 서양음식에 대한 이해가 높아 서양식 레스토랑에 즐겨 가는 편이다. 맥도널드와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보편화되어 있고, 고급해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타이완과 홍콩으로부터 들어온 레스토랑이 성업 중이다. 평균 수입이 베이징인들보다 비교적 나아 씀씀이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체면을 중시하고 허영심이 강해 남들에게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적 성향도 외식문화가 발달하는데 주요원인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중요한 손님이 오면 집에서 대접하지 않고, 음식점으로 가서 값비싼 대접을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고 손님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상류계층으로 갈수록 점점 심해져, 그들만이 향유하는 외식문화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과거의 빈곤한 식탁에서 벗어나 풍성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풍성한 식생활은 세끼 굶지 않고 매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농촌과 도시의 식생활수준이 다르고, 도시 내에서도 노동자와 공산당 자본가 등 계층 간 식생활수준에 매우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명 중국요리 중 하나인 카오야(拷鴨;구운 오리고기)의 경우, 유명 음식점인 전취덕의 카오야 한 마리 값과 길거리에서 파는 카오야 값은 약 8배나 차이난다. 이처럼 계급과 격차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식생활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현상은, 진정한 문화의 보편성을 실현 하는 것이 아니어서 낮은 계층에 속한 중국인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2. 올림픽을 계기로 변화하는 중국의 식생활

     1968년의 동경 올림픽, 1988년의 서울 올림픽 등 동아시아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경제발전을 수반했다.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한 중국도 연 10% 이상의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 중국의 경제는 공공자본과 산업자본의 투자, 수출 중심의 경제정책을 통해 성장해왔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의 경제는 더 많은 소득을 기반으로 한 내수시장의 확충을 통한 소비 진작으로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하여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파고들었고, 이에 따라 중국 소비자들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변화의 파문을 가장 먼저 맞는 것은 삶과 가장 밀접한 식생활이다.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 시에서 금지한 개고기 문제, 생활양식의 서구화로 인한 밀가루와 우유 파동,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것을 추구하게 된 고급화 현상의 세 가지 주제로 변화하는 중국인들의 식생활양식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가. 개고기 금지
     중국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개고기를 먹었다. 갑골문자에 나타나는 ‘犬’자와 은허(殷墟)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개뼈가 그득한 독 등의 증거로 미뤄보아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춘추시대의 시장에는 개고기 전문점이 있었고, 주례와 예기에서도 개고기국과 개기름에 대한 기록이 있다. 북송시대에는 개고기가 오늘날의 소고기 같이 중요한 육식 중 하나였다. 명대에 시내암이 북송시대를 배경으로 쓴 『수호지』에서도 흔히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개고기를 보자 노지심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젓가락을 쓸 겨를도 없이 손으로 집어 우겨
        넣기 시작했다. 그 고기와 함께 술도 큰 잔 열 잔을 더 들이켜자 어지간한 노지심도 양이 좀
        차는 듯 했다.                                                        - 이문열, 『수호지』 제 1 권

     원시 대에 접어들면 유목민족의 특성상 개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 여진족 또한 개를 신성시 여겨 잡아먹지 않는다. 청대에도 여전히 개를 먹지 않지만 당시의 속어를 모은 항언록(恒言錄)에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이 있다.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이 말은 비밀리에 개고기를 잡아먹는 행위는 성행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당시 집권층은 유목민족이었으므로 개고기를 먹는 행위는 반기를 드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그래서 몰래 유통시켜 식용했을 것이고, 개고기를 평가하는 등급도 자연히 낮아졌다. 가치는 떨어졌으나 대다수 한족들의 개고기 식용은 꾸준했다. 청조 말의 이홍장은 안휘성 출신으로 평소에도 개고기를 즐겼는데, 영국 수상에게 받은 셰퍼드를 고아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1928년 베이징에서는 개고기 먹는 것을 금지한다. 외면적으로는 개고기 먹는 습관이 없어진 셈이다. 또 도시에서 개 기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 2년 동안 약 28만 마리의 개를 퇴치하였다. 베이징시가 개사육과 식용을 금지한 것은 개를 기를 만큼 생활이 풍족하지 못했거니와, 광견병과 방뇨 등 위생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속담에 ‘개고기를 계속 끓이면 중도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개고기 먹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순 없었다. 결국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베이징 시내에서 개고기를 판매하는 112개의 음식점의 사업을 중지권고 했다. 대신 외국기자나 관광객이 주로 묵는 호텔 근처의 식당을 대상으로 내린 조치라는 점에서, 앞서 있었던 1928년의 개고기 금지와는 그 모양새를 달리한다.
     왜냐하면 1928년의 조치는 위생상의 문제를 들어 금지한 것이지만, 2008년의 중지권고는 다분히 외국의 눈을 의식한 것이다. 개고기를 팔고 거기서 먹는 것을 보면 외국인들에게 후진적으로 비춰질 것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하여, 그 내면엔 서구로 대표되는 외국에 대한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열등감에서 출발한 반동은 전혀 반대편에 있는 자기중심적으로 치닫게 되는데, 결국 자국 내에 개고기 식당의 판매금지권고, 폭력이 난무하는 노점음식상 철거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중요한 점은 이번 사태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가진 국가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식물을 식용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중국의 존재를 입증한 만큼, 중국의 식문화가 더 널리 알려지게 될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인터넷에서도 ‘대륙(중국을 지칭)의 길거리 요리’라는 제목으로 올라오는 전갈?해마?불가사리?바퀴벌레?매미유충 튀김 꼬치 사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음식들은 관광명소이기도 한 베이징 시내 왕푸징(王府井) 먹을거리 포장마차 거리의 명물이다. 그러나 이번 개고기 사태로 미루어 볼 때, 가뜩이나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이 문명국가로서 위신을 세우기 위해 즐겨먹던 길거리 식품들이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88년의 서울에서도 똑같은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당시 서울 시내에 자리 잡은 수많은 보신탕 전문점의 반발로 인해 ‘사철탕’ 혹은 ‘영양탕’으로 이름을 바꾸면 묵인해줬다는 점은 다르지만, 서양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에선 똑같다. 이것은 문화적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외신 언론들과 열등감의 반발로서 과격한 자기중심주의를 버리지 못한 정부의 탓이 크다. 세계에 존재를 널리 알린 올림픽은 시장의 개방이자 사고의 개방이다. 진정한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은 중국이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숙제는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자문화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나. 서구화 현상
     최근 국내 유제품과 밀가루 가격의 폭등 기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당과 탈지분유 등 13개 수입 유제품은 올 들어 약 24% 가량 상승한 것으로 추산한다. 밀가루 가격은 작년 대비 80% 상승으로 크게 뛰었다. 덕분에 유제품과 밀가루를 핵심으로 사용하는 중소 피자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사태를 전반적인 원자재 및 곡물가격의 상승과 환율폭등의 문제로 꼽을 수 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중국의 소득 수준 향상으로 인한 식생활 서구화 현상을 주요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1987년에 진출한 KFC과 연이어 1991년에 점포를 낸 맥도널드 등 기존 패스트푸드 점 외에도 피자헛 같이 피자 레스토랑도 입점하였다. 한국의 미스터피자도 2000년에 베이징 1호점을 시작으로 베이징과 톈진 등에 1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까지 20개의 매장을 확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활발한 외국계 기업의 진출은 중국 외식시장 규모의 두 자릿수 성장도 있지만 중국인의 서구화 현상이 그만큼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급속도로 서구화되는 중국인의 입맛을 알 수 있는 실례이다.

        제가 이곳 천진에서 피자가게를 시작한지가 정확하게 작년(2007년) 8월 1일 입니다. 6개월째네
        요. 오늘은 너무나도 급박하게 변하는 중국이야기를 하려고합니다. 피자와 관련되는 것으로…
        제가 10개월째 운영하고 있는 피자가게를 인수할 때 정말 낯선 메뉴가 있었는데 그것은 미역국
        과 오뎅국이었습니다. (중략) 8월의 그때만 해도 중국인들이 홀에 와서 피자를 주문할 때 주문
        패턴은 피자를 시키고, 각종 사이드 메뉴와 미역국 혹은 오뎅국을 시키는 겁니다. 또 찬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환타를 주문하고 뜨겁게 끓여달라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중략) 6개
        월 지난 오늘날에 중국인들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식습관을 보입니다. 요즘 피자 시키면서 미역
        국이나 오뎅국을 시키는 손님을 보기가 힘듭니다. 피자와 주스, 혹은 사이다를 주문하는 손님도
        늘었습니다. (중략) 또 기존 고객이 30대중반 여유 있는 가장 중심의 가족단위였다면 대학생의
        데이트, 50대 이상 노년의 가정 등 피자 애용폭도 대폭 늘었습니다.
                                        -네이버, 중국 정보 공유 카페 ID:SS95ZZANG님의 글 (08. 1. 26)

     작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중국인들의 입맛 변동이지만, 올림픽 기점으로 더 많은 외식업체들이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으므로 입맛의 서구화 현상은 가속화 될 것으로 추정된다. 미스터 피자의 성공을 발판 삼아 ‘피자에땅’도 국내에 300호점을 유치함과 동시에 중국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인의 피자섭취량이 점점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생맥주브랜드도 중국진출 채비를 갖추고 있다. 바로 가르텐비어가 그 주인공인데, 2008년 하반기 지점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관계자는 현재 중국이 캔맥주 혹은 병맥주 형태로 발달된 점포형태이나, 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양식 맥주바들이 빠른 속도로 시장을 넓혀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서양식 맥주바 특유의 세련됨을 바탕으로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가 중국 요식업계의 시장성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국제기업들이 소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서구화에도 그늘이 있다. 바로 아동비만 문제이다. 중국 11개 주요 도시에 사는 어린이 8만 명 대상으로 조사한 ‘중국 아동비만 전국 태스크보고서(2008)’에 따르면, 1996년과 2006년 사이 비만 어린이 수는 156%, 과체중어린이는 52% 증가했다. 7년 후인 2015년에는 현재의 3배가 넘는 345%나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표 딩종이 박사는 아동 비만율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섰다고 강조하고 “이 같은 증가율이 이미 통제를 벗어났다”고 우려했다. 덧붙여 “가난했던 사람이 부유해지면 가장 먼저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현상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어린이 비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가뜩이나 인구정책으로 인해 1가구당 1자녀 밖에 두지 못하는 중국 가정의 대다수가 어린이 비만을 겪어야 한다면 중국 정부로썬 골머리를 썩힐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물가상승 문제와 그에 따른 세계물가 여파이다. 올해 들어 물가상승에 대한 중국인민의 체감정도는 심각한 것이어서 ‘물가가 미쳤다(원제:?价狂想曲)’라는 노래가 유행할 정도였다. 그 중 식품류가격 상승은 23.3%로 대폭 상승하였다. 돼지고기 같이 68% 뛴 품목도 있지만, 우유와 소고기 가격이 덩달아 상승한 것이 눈에 띈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우유와 소고기를 즐겨먹지 않았으나, 10년 전부터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해왔다. 덩달아 우유부족, 국제치즈가격상승 및 공급부족, 소고기 부족 등 소비량은 늘고 공급이 부족해지자 중국은 소고기 공급을 위해 축산업을 국책사업으로 지정하였다. 사실상 곡물만으로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중국이 자국 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여해 곡물수출금지를 단행하고 소사료용으로 활용함으로써 세계적으로 가축사료값은 폭등했다. 중국의 식생활 변화가 지구촌 식량자원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는 것이다.

다. 고급화
     누구나 식탁 위에 올라오는 반찬 가짓수가 많아지면 맛 좋은 것을 찾게 된다. 중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맛있”는데서 “맛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추세다. 고품질과 맛 좋은 음식은 미래 국민생활의 기본 음식으로 인식되어 조미료 시장 성장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2004년 중국 일인당 GDP가 1000 달러를 초월했을 때, 국제관례에 따라 소비가 고품질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덩달아 중국 조미료 시장도 연간 13~14%씩 증가하고 있으며 생산액이 200억 위안(元)을 초과했다. 현재 많은 조미료가 해외외식업체는 물론이고 일반가정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대형슈퍼마켓에서 파는 일본의 간장 및 미소된장, 한국의 고추장, 쌈장, 재래된장 등 수입조미료의 가격이 중국 상품보다 최소 몇 십 위안에서 최대 몇 백 위안까지 비싸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의 구매가 두드러진다.
     가정 식탁의 고급화는 고스란히 밖으로 이어져 외식 산업에서도 나타난다. 한 끼에 삼만 위안 가량이 들어가는 초호화 식사로 유명한 중화요리 체인점 순펑(順峰) 외에도, 많은 외국계 레스토랑이 입점하고 있다. 프랑스요리로는 쥬스틴(Justine) 레스토랑과 맥심(Maxim) 레스토랑이 고급 호텔을 입지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브라스리 플로(Brasserie Flo;福樓)나 베이징 삼리둔(三里屯) 거리에 위치한 샤오메이(小美) 등 연착륙한 프랑스 레스토랑들도 중국 손님 비율이 60%를 넘어서면서 까다로운 중국 손님들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전채, 주요리, 후식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중국인들의 식문화와 동일하여 각광받고 있다.
     서양식 고급화는 와인 시장의 거대화로도 이어진다. 현재 중국의 와인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전 세계 와인 생산은 6.5% 증가하는데 그쳤으나 동기간 중국의 와인 소비는 61.8%나 급증했다. 지난해 중국의 와인 수입액은 2억 5800만달러로, 이는 아시아 시장에서만 60%를 웃도는 비중이다. 특히 2008년 올림픽 기간에만 사용할 와인을 프랑스 보르도에서 대량구매 하고 있다. 와인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5년 빈티지 보르도 와인은 물론이고 2007년 와인도 미리 예약했다고 한다. 중국내 와인 바이어들은 올림픽 효과가 와인 구매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장기적인 와인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선물 와인을 예년보다 2배 이상, 올림픽에 사용될 와인도 더불어 구매하고 있다. 작년 중국이 수입한 보르도 와인의 물량은 2006년 대비 82% 증가, 금액상으로는 158% 늘어난 4,500만 유로였다고 한다. 더불어 와인과 함께 하면 어울리는 세계 삼대 진미인 캐비어(철갑상어 알), 트뤼프(송로버섯)도 중국인이 맛들이기 시작하면서 와인값과 더불어 폭등하고 있다. 2007년 대비 20% 가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중국의 부(富)의 확산과 반비례해 수량은 빠른 속도로 감소될 것이다.


3. 결 론

     중국은 분명 올림픽이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개고기사태는 물론이고 티벳 시위, 종교 탄압 등으로 인해 지나친 통제 올림픽이 되면서 이미지 개선 효과를 거의 가져오지 못했다. 연이어 터진 멜라민 파동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말았다. 이로서 이미지는 떨어지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브랜드를 알리는데 실패함으로써 국가위상의 추락을 감수하게 되었다. 또 미국을 비롯한 거대국가들의 경제위기와 12%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8%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실패 올림픽이 아니냐는 의견도 분분하다.
     그러나 올림픽의 계기로 개방의 문은 활짝 열어놓은 채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관 충돌에 의해 혼돈사태가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 평등주의, 집체주의적 가치관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가치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것이다. 또 중국인민들은 사회계층 분화와 빈부격차의 심화, 지역간?세대간 생활양식의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도-농간의 생활과 소비행태는 급속도로 벌어져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변화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왜냐하면 현재 전 세계 정국이 불안한 외적요소와 그동안 중국이 겪어오던 부정적 내적요소가 합쳐져서 혼란스럽게 나타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진통은 중국이 겪고 있던 문제점들이 고름으로 드러난 것이다. 중국 정부 당국은 신속한 치료를 통해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멜라민 파동은 중국 기업 전반에 자리 잡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중국인이 음식을 대하는 각별한 애정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요식업계는 전 분야에 걸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믿지 못할 먹을거리’라는 인식은 발전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깨끗한 이미지를 주무기로 앞세워 중국 시장에 입점하는 외국 브랜드들은 비교적 낮은 문턱으로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올림픽 기간 동안 강화되었던 통제로 외국계 회사들로부터 빈축을 샀던 중국 정부이기 때문에 규제는 풀릴 것으로 보인다. 대신 멜라민 파동으로 인해 원산지들에 대한 감시와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여 업체는 비교적 안심하고 물품을 공급 받을 수 있다. 더욱이 신뢰도가 떨어지는 자국 내 브랜드와는 달리 믿을 수 있는 외국의 브랜드라는 어필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중국 식문화의 서구화, 고급화 현상은 2015년까지 50% 수준으로 확대되는 도시화율과 더불어 가속화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세계 어디에나 그들의 동포인 화교가 있고 그들의 식당인 중국식당이 있다. 중국 내부의 각 지역별로 발달된 요리들은 물론이고, 세계에 뿌리내린 중국식당 모두가 중화라는 연결고리 안에 하나로 묶는 ‘중국식 세계주의’를 음식문화로써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틀은 내부로부터 붕괴될 조짐이 나타난다. 세계화라는 바람은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타고 더욱 거세게 불어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인들의 식탁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도시로부터 농가로 점점 변화하고 있다. 밥상머리부터 일어나는 변화의 바람을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해 국내에선 각종 문화 콘텐츠들이 세계에 소개되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는 문화교류 속에서 문화 간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우리 문화에 적용하여 발전시키는 것의 전제는 우리는 한국인이고 또 우리가 지닌 문화를 기본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중국이 ‘가장 중국적인 것’을 어떻게 준비하여 세계에 선보일 것인지, 또 어떤 방법으로 세계화라는 강풍 속에 자국의 문화를 지킬 수 있을지 기대된다.

 

※주

1) 농산물에서 확실한 것은 화(禾, 조), 서(黍, 기장), 내(來, 보리)이고 동물은 개(犬), 돼지(豕), 양(羊), 말(馬), 코끼리(象)인데 어느 것이 식용이고 어느 것이 역축(役畜)이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2) 공자가 춘추 말기까지 조정이나 지방에서 불린 가요 305편을 선별한 것으로 풍(風), 아(雅), 송(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풍은 지방의 민요로만 따로 분류한 것인데 당시의 생활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3) 선부는 상격으로 연회를 베풀고, 포인은 실제로 칼을 드는 요리사, 내옹은 궁정 내부, 외옹은 궁정 외부의 향연을 담당했다. 형인은 물을 지피는 역할이었으며, 석인은 말린 고기를 보존 활용하는 담당이었다.


■ 참고문헌

1. 주영하「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책세상, 2000
2. 안용근「한국인과 개고기」 효일, 2000
3. 시노다 오사무「중국음식 문화사」 윤서석역, 민음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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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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