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사람들간에 진지한 대화가 줄어들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진지한 대화를 할 꺼리가 없거나 혹은 대화중 생겨나는 상호간의 의견충돌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고 싶지 않거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사회전반에 걸쳐 생겨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술자리에서 나누는 얘기들은 언제나
야구선수 이대호의 부진이유, 서태지의 복귀, 다크나이트의 개봉 따위와 같은 최근의 이슈가 될만한 것들 뿐이다.

어느샌가 우리의 모든 이야기들은 뉴스, 가쉽거리, 그냥 한번 회자되고 지나칠법한 가벼운 안주거리들로 가득차
있었다. 마치 가볍게 집어먹고 떨어지는 나초칩의 부스러기들처럼 순간순간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잊혀져갔다.

이런 상황은 비단 술자리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의 메인 화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포털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뉴스란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바뀐다.
끊임없이, 쉴새없이 바뀐다. 방금 금메달을 차지한 선수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올라오기도 하며 자연재해, 유명스타의 스캔들, 불안한 경제상황 등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들이
한데 묶여 올라온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얼마전까지 톱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뉴스들은 언제그랬냐는 양
사라지고 또다른 뉴스들이 자리를 채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나간 정보들 위로 새로운 정보들이 퇴적되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비단 인터넷만 정보의 퇴적 현상이 일어나는게 아니다. TV, 라디오, 신문등 모든 매체들도 마찬 가지다.
TV는 아침부터 새로운 소식을 정보를 던져주는 프로그램들이 끝나면 울고불고 질질짜는 통속극이 나오고,
주부님들에게 도움되는 교양강좌가 끝나면 애들이 보는 만화, 이후에는 가벼운 오락 프로그램, 또다시 드라마,
뉴스, 심야 오락 프로그램의 반복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된 이런 편집들은 수용자로
하여금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빌미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무수한 정보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챙겨보기에 바쁘다. 조금이라도 자신과 맞지 않는 연예인 혹은 프로그램이 편성되면 리모컨만 돌리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싫어하는가? 왜 좋아하는가?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용자가
생각하는 것은 리모콘 버튼을 한번 누르는데 소요되는 건전지의 양보다 적다.

인류가 사용하게 된 매체의 역사에서 현재를 100으로 기준하면, 언어체계의 활용은 약 90 정도에 위치한다.
그 이후 활자, 인쇄술, 신문, 라디오, 영화, TV, 인터넷으로 셈하면 점점 그 발달의 간극은 소숫점 아래로 내려가야
겨우내 셈할정도로 좁아지는 셈이다. 이렇게 매체의 발달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쏟아지는 정보의양은
브레이크 없는 엔초 페라리가 아우토반을 달리는 속도로 지나쳐 버린다. 결국 인류는 '무엇인가 보기는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혹은 알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정보를 자신에게 맞춰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대다수는 그냥 정보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정확히는 쏜살같이 지나치는 정보들에 넋놓고 있을 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렇게 쏟아지는 정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사실이 되는데 있다. 매스미디어의 사회적
기능중 상관조정기능(해설처방기능)이라는 것이 있다. 이 기능은 매스미디어의 정보전달을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는 Straight news와 사설과 같이 주관과 판단이 들어간 Feature news로 분류하되, 매체제공자들의
성향에 따라 정보제공을 편집하므로써 수용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것인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야구의 예로 들자면, 현재 한화vs롯데의 경기에서 1점차로 뒤지고 있는 롯데의 공격일때 9회말 2사 2,3루
에서 타석에 올라온 4번타자 이대호의 득점권 타율은 그 수치만으로도 객관적 사실을 담은 정보가 된다.
하지만 작년 코리안 시리즈에서 3루로 뛰려는 두산 이종욱 선수의 발을 낚아채 안티팬을 양산한 SK 정근우선수를
대상으로(한동안 정근우의 별명은 '부정근우','발근우'였다) 『SK 정근우 '부정'으로 3할타율 도전』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뜬다면 그것이 설사 내용상 부정父情이라 할지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제목만으로도 여전히
부정不正으로 인식될수 있다. (물론 기사의 내용은 그의 아들 재훈군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개 스포츠 뉴스만해도 이럴것인데 조중동과 같은 우익신문사나 한겨례, 경향과 같은 좌익신문사에 오르내리는
사설, 칼럼등은 얼마나 심하겠는가? 그들은 상대방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바쁘다.
눈가리고 귀가리고 입만 뻥끗 열어 목청을 돋운다. 서울역 광장 한복판에서 이러는 사람이 있다면 다들 미친놈
취급하며 제갈길이 바빴을테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신문너머로 펜끝을 통해 갈겨대는 흰소리는 무리없이
수용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런 사설, 낚시성 뉴스들이 수용자들을 가리기만 할뿐 남김없이 받아들여진다는데 있다.
우익신문이 쓰는 사설은 우익계통의 인물들에게, 좌익신문이 쓰는 사설은 좌익계통의 인물들에게. 그외에도
많은 정보들이 100이면 100에게 다 동일하게 받아들여질때도 있지만(올림픽 뉴스와 같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논하는 뉴스는 50대 50으로 받아들여질수도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관한 뉴스는 10대 90으로
받아들여질수도 있다. 0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진짜다. 모두가 사실이다. 단지 받아들여지는데 차이가
있을뿐이다.

이러니 진지한 대화가 진행될수가 없다. 모두 사실이니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진위여부의 판단은
뒷전이다. 쓰윽 훑어보고 자신에게 사실이면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거짓이면 버린다. 다음 아고라 같이
토론이 활성화된 사이트도 물론있다. 네이버 뉴스사이트에 뜨거운 감자는 아직도 리플이 달린다. 성지순례도
한다. 그런데 리플을 달고 게시물을 작성하는 개개인에게 모두가 사실이니 대화가 진행 될수가 없다.
절대 섞이지 않는 흑과 백의 싸움을 보는 것 같다. 회색은 용서하지 않는다. 마치 그들의 토론은 바둑판을
보는것 같다. 어떤 문제점이 제기가 되면 흑과 백이 치열한 자리 다툼을 한다. 흑의 여론이 우세한가 싶더니
백의 여론이 둘러싼다. 둘러쌓인 흑의 자리는 숨통이 없어서 토론장에서 사라진다. 흰돌이 검은돌을 사방으로
둘러싸면 바둑판에서 띄여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바둑돌은 회색이 없다. 모두 제각기의 색깔을 가지고
3, 4-10,8 이런식으로 제 자리만 지키고 있을뿐이다.

대화의 기본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점을 비교하면서 조금 더 나은 의견,
조금 더 좋은 생각으로 발전하는데에 있다. 요즈음 사람들을 보면 모두 각자 자기의 목소리만이 사실이라며
소리지르기 바쁘다. 서로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서 그 무수한 목소리에 뒤덮여 아무런 말도 들을수가 없다.
이러니 진지한 대화를 통한 생각의 관철은 커녕 생각조차 할수가 없는 것이다.
Posted by 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