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중의 바다」가 써진 배경

  북한이 「꽃 파는 처녀」「어느 자위단원의 죽음」과 함께 북한문학의 최고로 꼽는 「민중의 바다」(원제 : 피바다)는 항일혁명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써진 소설이다. 민중들에게 혁명의식을 고취시키고 김일성 권력의 전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두고 쓰였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을 간과하고 읽는다면 대화와 문맥 속에 감추어진 주체사상 아래 이데올로기를 놓치기 쉽다. 고로 당시 북한 사회가 이끌고자 했던 문학예술의 진로와 뿌리내리고 있던 이데올로기의 이해가 선결되어야한다.

  「민중의 바다」가 개작되어 소설로 출간 된 시점은 1967년으로 김일성의 주도로 유일사상 체계 아래의 주체 문학이 북한의 지배적인 문예정책으로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특히 기존까지 북한 문학의 전통으로 평가되고 있던 카프를 평가절하하고 항일혁명문학을 그 유일한 혁명 전통으로 평가하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을 반대하는 일군의 문학가들에게 반당, 반종파 투쟁이란 형태의 비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김일성은 1967년에 들어 여러 연설에서 당시 북한 문학 분야에서 나타난 부르주아적이고 수정주의적인 요소를 비판하였다. 이는 첫째, 반당수정주의분자들의 사상여독을 청산하여 당의 유일사상 체계를 튼튼히 세우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었으며 둘째,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민중을 한데 묶어 당정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항일혁명문학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주로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항일혁명운동이 문학예술로 재창조 되었을 때, 북한 사람들이 더 깊숙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했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쉽사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과거였음을 감안하면 항일혁명문학이 중요한 인식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끔 만들 수 있었다.

  「민중의 바다」는 이런 배경에서 해석, 개작된 소설이다. 과거 항일혁명운동 시기에 창작된 연극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는데 이 무려에 발견된 텍스트인 「혈해지창」은 만주에서 제작된 여러 판본 중에서 가장 형태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작품들이다.1)

  「혈해지창」이나「민중의 바다」가 가지는 공통점은 유격 정찰원(조동춘)을 감추기 위해 일본군들에게 막내아들(을남이)을 희생시키면서도 끝까지 혁명완수에 충실한 어머니(순녀)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혈해지창」에서는 이 어머니가 중국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어, 조선과 중국 두 나라 민중들이 일본에 맞서 공통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면에 「민중의 바다」에서는 모두 조선 사람으로 되어있어 당시의 현실감을 떨어뜨리고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1960년대 전반기만 하더라도 민족적인 것을 강조하면서도 결코 민족주의로 빠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견지했던 반면,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자민족중심주의로 치닫는 주체사상체계 확립 이후의 전반적 분위기는 생각할 거리를 남겨두고 있다.

  당시 형성되어 있던 분위기란 민족적 심리와 기질을 민족적 성격으로 보려하는 경향에서 시작되는데, 역사적 전변 속에서 민족적인 것을 찾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이 시기에 들어 민족을 탈역사화 시키려는 경향과 맞물려 민족적인 강조 속에서 제반 민주주의의 약화 또는 결여로 이어지게 된다. 식민지 경험을 한 국가에서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자민족 중심주의의 유혹에서 북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2)

  흥미로운 점은 독일의 나치즘으로 나타난 파시스트 운동과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당시 독일의 총통 히틀러Hitler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들에게 만연한 패배주의, 지도자불신등을 타개할 방법으로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운 슬로건을 활용하였다.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3)이라는 유명한 연설에서 사상적인 영향을 크게 받은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을 비롯하여 신문, 연설 등에서 민중들에게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역설하며 자민족중심주의의 뿌리를 내렸다.

  이상과 같은 시각에 따라, 본고는 먼저 「민중의 바다」에서 나타난 정치 이데올로기를 살펴보고, 이 이데올로기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발생한 파시스트 운동들과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을 지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2. 「민중의 바다」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파시스트 운동의 비교


  가. 권력의 정통성 확보

  1967년 김일성의 지도하에 확립된 주체사상은 북한정권의 정통성 수립을 선결과제로 삼았다. 다른 공산주의의 지도자들은 장기간에 걸친 민족해방투쟁 혹은 게릴라 투쟁을 통하여 공산정권을 수립하여 스스로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의 만주 게릴라 조직인 ‘동북인민혁명군’으로서 활동하다가 내부반란으로 궤멸상태에 치닫자 시베리아로 건너가 소련 공산당의 일원이 되었다. 소련은 북한에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여 미국을 견제할 요량으로 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웠기 때문에 북한정권의 역사적 정통성 기반이 약했다.

  김일성은 뿌리를 튼튼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동북인민혁명군’ 시절 2군 3사단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자신의 사단의 이름을 ‘항일유격대’라 칭한 이때의 활약상을 부풀렸다. 북한의 모든 선전 책자에는 한결같이 항일유격대의 모습을 신격화된 군대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문학예술에서도 시도되었다.


   노인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조종의 산인 백두산위에 장수별이 떠서 영롱한 빛을 뿌린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금년 초범에 마침내 나라와 백성을 건질 조선군사가 일어났다오. 듣자니 그 군사를 항일유격대라고 부른다는데 아무튼 땅을 주름잡아 하루에 천리를 내달으며 왜놈들 베기를 삼대 베듯이 해서 원쑤의 주검이 낙엽 구을 듯이 한다고 소문이 자자합데다.”


  이외에도 작품 곳곳에서 ‘압록강줄기를 타고 넘나들며 원쑤에게 세찬 불벼락을 안기었다’, ‘땅속에 매복하고 있던 유격대가 솟구치더니 원쑤들의 전차들을 뒤집었다’ 등 북한문학 특유의 과장되고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여 신출귀몰한 군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김일성이 투쟁활동을 통해 지도자가 되었음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권력의 정통성을 세우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도는 조국광복회 10대강령을 혁명 기치로 삼은 데서도 드러난다.


   항일유격대는 조선혁명에 대한 새로운 웅대한 구상을 안고 백두산지구로 진출하였다. 조선혁명은 조선사람 자신의 손으로 수행해야 하며 또 능히 수행할 수 있다는 사상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조국광복회 10대강령과 창립선언에 접한 모든 조선 사람들은 감격에 목이 메었으며 남녀노소가 한결같이 그 새 노선을 관철하는데 떨쳐나갔다.


  위에서도 알 수 있듯 김일성이 직접 조국광복회를 조직하고, 10대강령을 직접 작성한 것인 양 묘사하였다. 그러나 일제시의 문서에 따르면 당시의 조국광복회는 북한의 김일성에 의하여 조직된 것이 아니라 3 ·1운동 이후 용맹을 떨친 오성환과 엄수명, 이상준 등 3인에 의해 발기되어 1936년 6월에 재만주 한인조국광복회 선언을 발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4)

  이와 같이 주체와 항일혁명운동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문학예술에 이토록 표현한 것은, 정치적 자주성의 정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김일성 중심으로 권력체제가 집결하길 기도했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이 이처럼 문학예술을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는데 사용했던 것은 신문을 제외한 TV · 라디오 매체의 보급률이 낮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진문물이 발달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두 독재자, 히틀러와 무솔리니Mussolini는 적극적으로 신문 · 라디오 · TV등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문학예술을 사용하여 민중을 계몽하는 데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대신 언론사를 휘어잡고 발달한 매체를 이용하여 정부 시책과 독재자들에 대한 지나친 찬양으로 일관되게끔 했다. 하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출신이었던 정치꾼들이 우상화될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불안했던 국가정세와 정치 세력의 불신, 기울어가는 가세 등 정치 · 경제적 상황 외에도 대중매체를 통한 현기증 나는 정치선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학예술과 매체를 대중봉기와 통치수단으로 삼은 공산정권이나, ‘민족지상’ ‘국가지상’을 내걸고 마치 집단 최면을 일으키듯 대중을 광기로 몰아넣은 파시즘이나, 전체주의 정권의 언론장악 논리와 방식은 대동소이했다.5)


  나. 적대적 대상과 속죄양

  역사적으로 통치자들은 민중의 민족의식을 자각시켜 일체감을 높이면서 그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시키는 방법으로, 민족의 공통된 적대적 대상을 설정해왔다. 그런 방식이 통치자들이 원하는 성과를 항상 보여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분오열된 민중들을 한 가지 정치체제 아래 끌어들이는데 유효했다. 김일성은 「민중의 바다」에서 민족의 적대적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민중들은 그들을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명시해두고 있다.  

  「민중의 바다」의 배경은 1930년대 일제 통치 아래 만주 연안으로, 당시 조선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쉴 새 없이 이주할 땅을 헤매며 끼니를 때우지도 못하고 농기구도 없이 땅을 일구는 비참한 생활을 해왔다. 게다가 세월이 지날수록 중국 사람들의 차별이 심해지고 농업개척의 여러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기에 일제의 탄압이 더해지자 조선인들의 곤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적대적 대상이 일본인으로 설정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굶주리고 병든 민중을 핍박하는 것은 일본군이었고, 이들에게 달라붙어 마을의 정보를 제공하여 일제통치에 이점을 제공하고 배불리고 등을 데우는 친일파는 가장 먼저 척결되어야 할 적이었다. 이들 무리에 대한 적대적 의식은 아래와 같이 표현된다.

 

  원남이는…(중략)…절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 우리가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려면 언제나 이 모양대로 지낼 수는 없어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저 왜놈들한테 얼마나 악착하게 짓밟혔는가를…그런데 그놈들은 점점 더 우리를 악착하게 짓밟으려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다가 죽어야 사람값에 갑니다. 사람답게 살자니 왜놈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장국은 초입에 잘 가꾸어진 몇 고랑의 담배 밭을 바라보니 기분이 흡족한지 허리까지 치는 담배 잎을 만져보고 두루 한 바퀴 돌더니 김이 묵은 것을 보자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여태 김을 묵혀 두었군. 자, 이것들을 어떻게 한다?”

   그는 당장에 그 누가 옆에 있으면 호령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둘러봐야 제 욕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더욱 화가 나는 듯 낯색이 표표해졌다.

   “빌어먹을 여편네 같으니라구, 굶어죽을 것을 거두어주었더니 배은망덕도 유만부동이지. 당장 주리를 틀어놓으리라.”

 

  위 대목에서 원남은 일본군이 민중들에게 저지른 악행을 얘기하고 그들에 대한 적대적 의식을 공고히 하여 왜 항일혁명운동이 행해져야 하는지 역설한다. 일본군의 무자비한 무력통치와 식민지건설에 대한 저항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데, 아래 글은 이런 와중에도 일제에 들러붙어 같은 동포를 부려먹고 자신의 잇속만을 생각하는 친일파를 같은 선상에 두어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중의 바다」에선 이외에도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광산부녀회장은 부르주아의 식구를 좋게 보자는 어머니의 말에 불만스러운 듯 잰 말투로 서슴없이 밀막아버렸다.

  “…(중략)…그렇다고 나도 그 여자를 두둔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화약이 굴속에 있고 그 여자가 그것을 알면서도 아직 고해바치지 않았다면 가난뱅이 딸이라는 제 처지를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중략)… 우리가 혁명을 하자면 지금 당장 싸울 생각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면 다 깨우쳐서 싸움에 나서게 해야 돼요. 그런데 그 여자는 아직 양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 않나요?”


  주목할 점은 어쩔 수 없이 빚값에 결혼한 귀순을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잘 입고 잘 사는 것들을 원쑤같이 취급하는 분위기이다. 자의와는 상관없이 자본가의 첩이 되는 것만으로도 죄악으로 논하고 있는 대목에서 부르조아 계급에 대한 적개심이 어느 정도인가 짐작케 한다. 우리는 여기서 김일성이 간접적으로 행한 비판을 통해 민족을 무력으로 탄압하는 일본군에 대한 적대적 의식에 동조하여 당을 지지하는 자들 외에도, 부르조아 사상을 지닌 자들을 반동으로 처리하여 숙청하고 반 부르주아적 사상을 지닌 사람들을 체제에 흡수하여 공산주의 기반을 다지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속죄양’을 만들어내 체제에 통합되고 남은 사람들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통합시키는 방법은 파시스트 체제 지배 방식에서 흔히 보이는 것 중에 하나이다. 대부분의 파시즘 체제는 공산주의나 독점자본 등에 대한 사회의 증오감을 불붙여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견인해 내는 메커니즘을 이용했다. 히틀러는 여기에 덧붙여 유럽사에 잠재해 있던 반유태주의를 활용하였다. 그는 새로운 인종학을 창안하여 유태인을 비아리안족으로 규정하고 조부모의 어느 한편이 유태인인 경우 유태인으로 간주하여 탄압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최초 나치즘을 열성적으로 지지한 중간 하층계급 -주로 소규모 자영 기업가, 기술공, 화이트칼라 노동자- 외에도 블루칼라 노동자 계급과 자유주의자 및 가톨릭 부르조아들을 성공적으로 편입시켜 체제의 안정감에 무게를 실었다.

  적대적 대상을 통해 민중을 하나로 뭉치고 속죄양을 만들어내 반대세력들을 쳐내면서 동시에 남은 사람들을 규합시키는 방법은 주체사상 아래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외부적으론 미국의 압력이 거세고, 내부적으론 김일성 자신의 1인 독재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더욱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항일혁명운동 시대를 통해 당시 조선인들을 핍박하는 일본군과 현재 압력을 가해오는 미국군을 적대적 대상으로 개념을 추가정립하고, 공산독재에 반하는 반당무리들을 숙청함으로써 김일성에게 권력을 집중코자했기 때문이다.


  다. 반대세력의 해결방식

  적대적 무리에게 핍박받던 어머니가 사상적으로 계몽되고, 급기야 무력시위에 몸을 바쳐 혁명을 완수하는 것이 진정한 혁명의 길임을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민중의 바다」의 주된 줄거리이다.

 

  어머니는 갑순이의 울먹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외면하였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듯이 말하였다.

  “나도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좋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너희들이 철없이 덤빈다고 대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악한 놈은 망한다고 했느니라. 왜놈들이 망하는 것은 정한 이치다.”

 
  이토록 일본군의 핍박 아래 겪어온 무수한 풍상과 참혹한 피의 체험 속에서 굳혀온 소극적인 생활의 신념을 확고히 하던 어머니도 유격대를 도와 혁명에 일조하면서 점점 계몽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이제야 남편을 더 깊이 이해한 것 같이 생각되었고 그만큼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중략)… 즉 슬픔 앞에 울고만 있을 수 없으며 천대와 굴욕을 참는 것이 곧 그것을 항거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사람들의 순결한 넋을 모욕하는 것임을 어머니는 깨닫는 것이었다.


  소극적인 자세를 일관하여 핍박을 외면해온 자세가 외압에 항거하여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모욕하는 것임을 깨닫는 장면은, 현실에 안주하여 혁명정신이 헤이 헤진 자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진정한 혁명의 길은 맞서 투쟁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폭력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적대적 세력에겐 폭력만이 해결책임을, 다시 말하자면 피는 피로 씻는 보복주의가 진리임을 제시하고 있다.


   땅! 땅! 땅!

   연거푸 복수 탄이 날아갔다. 남편의 이름으로! 을남이의 이름으로! 이 총을 남기고 죽은 조동춘 공작원의 이름으로! 별재노인의 이름으로! 경철이의 이름으로! 시월네의 이름으로! 그리고 억울하게 짓밟히고 학살당한 모든 조선 사람들의 이름으로, 피눈물과 한숨 속에 장사지낸 지난 청춘의 이름으로 어머니는 쏘고 또 쏘았다.


  악착같이 자신을 괴롭히고 동네민중들을 핍박하였던 일본군의 우두머리 호소가와에게 어머니가 분노의 총탄을 퍼부어 사살하는 장면은 폭력을 정당화하고 미화시켜 사뭇 비장미까지 흘러넘치는 듯하다. 결국에는 폭동을 통해 일본군을 비롯해 일제의 앞잡이로 나오는 친일파 변장국과 광주 사업가인 부르조아 강봉규까지 모두 처단하여 혁명의 기를 드높이며 글을 맺는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이 살길은 무력을 통한 혁명밖에 없음을 제시하며 당의 군국화 정책을 정당화 했다.

  이러한 인식은 파시스트 지배 체제 아래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다. 파시스트들은 반대자들을 설득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숙청시켰다.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당원들에게 지시하여 북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노동조합의 본거지 및 회관들을 파괴했으며, 급기야 반대세력인 개혁사회주의 의원 마테오티Matteotti를 납치, 살해하게 했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며칠 전에 마테오티는 의회에서 선거 기간에 자행된 파시스트들의 폭력을 목록으로 작성해 공개하면서 이를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6) 이 사건으로 인해 무솔리니는 자신의 정치생활에 위기를 맞았으나, 12만 6천명의 경무장한 파시스트 당원들을 이끌고 독재를 선포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했다.

  1933년에 히틀러 내각이 성립하자 비밀국가경찰(Geheime Staatspolizei;Gestapo)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테러행위와 강제수용 등 잔학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나치스체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게슈타포들이 1934년 한 달 동안 잡아들인 유태인은 천명에 달했다. 히틀러는 이런 식으로 현대국가사상 유례가 없는 개인에 대한 테러를 통해 권력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 그 가운데서도 인류역사상 최악의 집단적인 절멸계획이 등장했는데, 600만 유태인 독가스 학살이었다.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이 대규모 학살로 나치는, 이데올로기를 실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관료주의적 완벽성을 통해 파시즘의 전율할 만한 파괴성을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격한 지배자들이 폭력을 정당화하여 이루고자 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체제를 정립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는 반대파들을 공개적으로 숙청함으로써 독재를 선포하고자 하였다. 그야말로 모난 돌에게 정을 때림으로서 공포감을 조성시켜 반대파의 의견을 자연히 수그러들게 만드는 이른바 공포정치의 발현이었다. 둘째로, 군국화를 이룩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국들을 합병시키고자 하였다. 군수사업을 통한 군사력증강은 산업 활동에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하였기 때문에 침체된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 나아가 영토 확장을 통해 경제적 곤궁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 침공을 통해 인구과밀과 원유문제를 해결코자 했고, 히틀러는 피히테의 연설에서 말한바와 같이 독일 민족의 생활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종족을 추방하거나 노예화 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서 남한을 상대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과거의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전쟁에서 패하며 사라졌지만, 북한은 궁핍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파시스트 지배의 특성을 가진 모든 국가들이 그러했듯이, 그들의 반대세력을 처리하는 방식이 어떤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결  론


  파시즘을 포함하여 모든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것들은 사회의 모든 계급에 있어서 불만을 가진 자들, 안주할 곳이 없는 자들, 사회적으로 고립된 자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자들, 특히 핍박받고 소외당하는 자들에게 특히 매력을 준다.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 사회적 에서 실패하고 낙오된 자들에 의해 지지되어 진다. 특히 노동자, 농민 계급과 같은 하층사람들이야 말로 파시스트 운동의 핵이 되는 신봉자들이라 일컫는다.

  「민중의 바다」는 대다수가 농민으로 구성된 북한의 정치체계 속에, 민중들에게 확고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문학이라고 생각된다. 본론에서 논한바와 같이, 「민중의 바다」에는 첫째 김일성의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격화, 둘째 적대적 대상 및 속죄양 형성을 통해 되새기는 주적개념, 마지막으로 혁명에 진정으로 도달하는 길은 무력을 통한 것임을 명시하여 군국주의의 정당화가 모두 녹아들어 있는 주체사상의 정수이다.

  김일성은 공산주의운동의 다원화를 인정한 모스크바선언(1957) 이후, 마르크스 · 레닌주의에서 변질된 1인독재를 합리화하는 통치논리를 펼쳐 주체사상을 확립했다. 주체사상은 최초 순수한 공산주의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어 동시대의 공산주의국가들로부터 별다른 인정과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극단적인 혁명이론과 전략전술은 파시즘 · 나치즘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이러한 주체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시즘을 비롯한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1969년 주체사상이 성립되었을 당시의 출간된 문학예술들은 북한문학의 근원이오, 현재까지 북한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출발지이다. 파시스트 체제 지배 방식을 거친 다른 나라의 이데올로기와 당시 북한문학예술에서 나타난 주체사상의 관계를 심도 있는 접근 아래 분석된다면, 현재까지 북한을 둘러싼 껍데기들을 깨뜨리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


※ 주
1) 김재용, 「북한문학과 민족문제의 인식」,『분단구조와 북한문학』p. 91 
2) 위의 글. p. 91 
3)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는 1807년 베를린 강당에서 이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독일인은 모든 종족들 중에서 가장 우월한 종족이기 때문에 혈통이 순수할 것과 독일 민족의 생활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종족을 추방하거나 노예화 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를 지니고 있는 것, 마지막으로 이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그리고 스스로 정당화 된 힘을 사용하여 독일적인 평화를 성취 할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4) 한국자유총연맹, 「북한 주체사상의 본질과 실체」 p.101
5) 경향신문, 「매스미디어와 권력」 
6) Christopher Duggan, 「A Concise History Of Italy」, 김정하역, 개마고원, 2001


■ 참고문헌

1. 김종회, 「북한 문학의 이해」, 청동거울, 1999
2. 김재용, 「북한 문학의 역사적 이해」, 문학과지성사, 1994
3
. 김중하, 「북한 문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 국학자료원, 2005
4. 김재용, 「분단구조와 북한문학」, 소명, 2000
5. 한국자유총연맹, 「북한 주체사상의 본질과 실체」, 한국자유총연맹, 1989
6. Claude David, 「Hitler et Nazisme」, 정성진역, 탐구당, 1983
7. Christopher Duggan, 「A Concise History Of Italy」, 김정하역, 개마고원, 2001
8. Timothy W. Mason, Sozialpolitik im Dritten Reich : Arbeiterklasse und Volksgemeinschaft 
   김학이역, 한울아카데미, 2000
9. 조도제, 「나치즘의 政治 이데올로기 分析 」, 경남대학교 법정대학 법정논집 제2권, 1989
10. 김성건,「파시즘(Fascism) 출현의 사회적 배경」, 청주여자대학 논문집 제14권, 1984
11. 이이화, 「만주지역 항일 유격대 활동과 북한의 항일정신」, 민족통일학회
12. 경향신문, 「매스미디어와 권력」


Posted by 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