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 론

     오늘날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큰 획이 정치와 경제라면, 여러 가지 문화요소들이 하부구조로서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다. 가장 아래층에 속한 요소가 건축, 회화, 조각, 음악 등과 같은 예술 문화라면 그 위엔 역사, 지리, 종교 등이 차지하게 된다. 물론 이 순서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와의 연계작용을 통해
분류를 할 수 있는 단위로서 구분된다. 예를 들어 ‘현재 경주 불국사의 관광수익’ 이라면 ‘경제-종교-건축’ 혹은 ‘경제-역사-건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사회의 특정 현상들에 대해 단일 문화 그 자체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에게서 그 연관성을 찾는 폭넓은 시각이다.
    
뒤집어 말하면 어떤 단일 문화로서 현대 사회상을 투영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의 종교는 그 구성과 목적성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치 경제논리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치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종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고해지므로 역사적 가치가 높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통용되는 문화로서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본고는 위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하여, 제도종교와 차이를 두는 신(新)종교의 교리와 활동을 통해 바라 본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논할 것이다. 더불어 그들이 주장하는 목소리와 도출 되는 기성 제도종교의 문제점을 비롯하여 국내 현 실정을 얘기하고, 또 우리는 어떤 자세를 견지하는 지 논함으로써 원고를 마치고자 한다. 오늘 분석할 종교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라엘리안 무브먼트』로 필자에게나 독자에게나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2. 『라엘리안 무브먼트』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프랑스 태생 카레이서 출신의 클로드 보리롱 라엘(Claude Vorilhon Rael)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이다. 그는 1973년과 1975년에 프랑스 중부 지방의 한 사화산구에서 UFO를 타고 우주인 엘로힘(Elohim)을 만났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토대로, 라엘은 엘로힘과 인간이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는 대사관을 건설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대사관이 지어지면 외계인들은 모든 종교의 예언자들과 함께 지구에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며, 구성원은 라엘리안 무브먼트로부터 급료를 일절 받지 않고 기부금으로만 운영되는 순수 비영리 단체이다. 현재 전 세계 182국에 6만 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고, 국내 활동 회원은 약 5천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1)
     이들의 주요 주장은 지적설계론(인류기원설), 인간복제지지, 천재정치론 등으로, 기존 제도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학적 이론을 상당수 따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논리가 과학철학이 아닌 종교철학에 가까운
것이 그 특징이랄 수 있겠다.

가.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교리를 통해 바라 본 현대사회
    
종교 단체는 종교의 뿌리인 교리를 토대로 신도를 확보한다. 교리는 종교의 정체성이자 근원이기 때문에 가치불변의 원칙을 고수해야 하지만, 현재 통용되는 사회적 가치와 논리에 따라 해석의 범위를 확장하거나 축소하는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많은 제도종교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교리 해석에 있어 가치충돌에 의해 많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경우는 역사가 30년도 채 되지 않고 교리의 변화폭이 좁기 때문에 이해하기 용이하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뼈대라고도 할 수 있는 기본 9가지 철학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행동이 가져
오는 결과를 의식한다. 2. 생명을 존중한다. 3.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한다. 4.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5. 타인을 존중한다. 6. 비폭력 7. 세계 평화 8. 함께 나눈다. 9. 의식과 이해에 기초한 행동 등 이다. 
     대다수의 항목이 여러 종교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평화와 사랑, 이웃에 대한 인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3.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기초로 제시하고 있는 철학이라 눈길을 끈다. 위 철학은 “마약, 담배, 커피, 과도한 알코올은 금지된다. 이러한 물질은 상습자 자신의 유전자 코드를 파괴하고 면역체계를 악화시켜 질병을 불러올 뿐 아니라, 후대에 까지 그 유전적 결함을 물려주게 된다.”주요 골자로 삼고 있다. 흡연, 음주에 대해 엄금하는 교리는 한국 개신교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개신교가
육체를 신이 머무르는 신성한 장소로 명하고 신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에 반해,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순수 유전자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후대에 우수한 유전자 남겨주는 것이 우선시 된다는 점에서 모양새를 달리한다. 2)
     이처럼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신보다 과학적 논리를 들어 주장한다는 점에서 급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여전히 종교의 테두리 안에 속해있다.
     첫째, 그들이 주장하는 외계인 ‘엘로힘’의 존재이다. 라엘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엘로힘에 의해 DNA 조작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의 구절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수가 아닌 복수, 즉 다수의 외계인에 대한 증명이자, 훗날 인간들의 손을 거치면서 엘로힘이 하나님(God)으로 오역된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신이 아닌 초월자의 의미로 대신 되었을 뿐, 초월자(엘로힘)-예언자(라엘)의 구성은
기존종교와 대동소이 하다.
     둘째, 사후세계 즉 영생의 개념이다. 제도종교들의 구원, 윤회 등의 내세 관념은 사후세계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궁금증에 대한 해소이자, 인간 근원에 대한 단초이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에서도 이런 영생관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도 공상 과학적 특징이 짙다. 적어도 다음 세대는 2만 5천년 진보한 엘로힘처럼 성장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성인의 육체로 복제되어 삶을 지속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복제되는 것은 단순히 육제뿐만이 아닌 기억과 성격 등 사람의 인성 또한 그대로 복제된다고 한다. 현재 이들의 생명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엘로힘에 의해 곧바로 ‘기억의 연속’ 즉, ‘삶의 끝없는 지평선’으로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1년에 네 번 ‘인 치는 작업’을 가진다. 외계인과 교신하는 자(접신이 허락된 자)3)가 사람들의 오른손과 미간사이에 안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안수는 외계인들이 거주하는 혹성의 컴퓨터에 입력시키기
위한 작업으로, 이 정보를 토대로 훗날 언제든지 복제인간(기억과 성격을 그대로 가진)으로 태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종교들이 인간 사후 반드시 내세를 거쳐야만 영원한 육신 혹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데 비해, 현세에서 바로 복제를 통해 생을 지속 시킬 수 있다는 것과 컴퓨터에서 한번 저장된 문서를 계속
출력할 수 있는 것처럼 정보를 토대로 언제든지 복제인간으로 살아 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 특징이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교리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현대사회의 과학적 논리를 수용하여 신빙성을 더한 것이다. 중세시대부터 과학과 종교를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떼어 놓은 탓에 종교는 신비 그 자체로만 자리 잡았을 뿐, 과학적 검증 시도는 애초에 불경한 것으로 치부 되었다.4) 산업혁명의 발판이 된 과학적 방법론의 등장은 르네상스 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종교 속에 종속되어 있던 사람들의 가치관을 부수었다. 자연의 일정한 법칙과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합리주의적 사고는 현대에도 전히 유효하여, 대다수의 현대사회인 들은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 돼야 비로소 신뢰를 하고 안정을 느낀다.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이런 성향을 십분 반영하여 종교체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나.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대외활동을 통해 바라 본 현대사회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대외활동이 잦은 종교단체 중에 하나이다. 퍼포먼스는 주로 거리에서 반신의 라엘리안들이 피켓을 들고 춤을 추며 행해지는데, 이 같은 행위가 모든 사람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성을 표현하고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 라엘리안 무브먼트 정윤표 대표는 “인류사회에 끊이지 않는 증오와 폭력, 전쟁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여성성의 가치를 계발하고 확산시켜 나가는 것 일뿐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행사를 기획한다.”고 말한다. 5)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남성의 정복욕과 호전적인 성향에 따라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며 발달해 왔다. 현재에도 인도-파키스탄 / 팔레스타인-이스라엘 / 중국-티베트, 대만 등 많은 국가들이 지역분쟁을 치르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휴전국으로서 전쟁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크게 보면 분쟁과 전쟁이지만 개인단위로는 추행, 강도, 살인, 폭행 등 폭력 행위가 여전히 빈번하다. 상대방을 해하려는 성향이 강해질수록 타인에 대한 불신도 커져 사회는 더욱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라엘리안들의 퍼포먼스는 인간다운 마음을 점점 상실해가는 현대사회인들에게 경계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퍼포먼스의 주제가 바뀌어도 (여성성, 라엘입국허가,다양한 인류기원론수용) 반라의 복장을 한다는 점을 들어, 여성성 강조가 아닌 또 다른 선정적 홍보 전략 내지는 성의 상품화가 아니냐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있었던 채식주의자 퍼포먼스, 모피코트반대 퍼포먼스6) 등의 소규모 누드 퍼포먼스에도 들끓었던 실정을 감안하면, 종교단체의 반신 퍼포먼스는 더욱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여론이 대다수이다. 작년 9월엔 아프리카 여성의 할례금지를 주장하며 부당하게 침해받는 여성의 권리에 대해 조명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여성들의 잃어버린 클리토리스를 되찾아 줍시다.’라는 슬로건 아래 행해진 캠페인은, 야
만적인 음핵절제의 악습에 고통 받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실상을 고발하기도 했다. 
    
다만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외활동은 종교가 지녀야 할 정치적 중립성을 깨뜨려 야기되기도 했다. 노무현 전前대통령 정권 때 인간복제를 지지하는 라엘이 입국하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입국을 금지하자, “소수종교 탄압을 자행하는 현 집권 세력의 교체를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하며 작년 대선 당시 후보였던 이명박 현現대통령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요즈음 들어 이와 같은 종교의 정치적 편향이 자주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다종교 국가에서 특정종교의 정치지지 발언은 매우 위험함을 알아야 한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경우 한국에서 그렇게 교세가 강하지 않고 신도수가 작아 별다른 해프닝 없이 끝났지만, 개신교와 같이 초거대규모의 종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 개신교 장로라는 위치 때문에 여러 목사들이 그를 지지하는 광경은 국민들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하는 광경이었다. 구체적인 예로, 한국기독교개혁운동(대표 한성진 교수)의 지지성명발표, 금란교회 홈페이지 대문에 실린 ‘명사랑’ 배너 등의 사건은 정교유착의 위험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무지몽매한 작태라고 밖에 볼수 없다. 종교 아래는 기치 아래 모이는 사람들은 어떤 특정 이념적 성향으로 모인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단지 정치인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가뜩이나 좌익과 우익, 영남과 호남, 수도권과 지방, 세대갈등, 빈부격차 등 이루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편가르기와 격차로 인해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종교까지 여기에 뛰
어든다면 한국사회의 혼란이 심화될 것은 당연지사다.
종교인들은 정경유착보다 파급력이 강한 정교유착의 무서움을 인식하고, 그들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 교리 속에서 중립을 지켜야 함이 마땅하다.


3. 결 론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실상은 사실 아주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총체적 강령을 담은 ‘우주인의 메시지(국내명 진실의 서)’는 외계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성경을 풀이하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라엘은 인류의 조상(엘로힘)이 지구로부터 1광년 떨어진 어느 혹성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항성 중 태양계로부터 가장 가까운 항성은, 지구로부터 4.3 광년 떨어진 켄타우루스 알파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항성도 없는 곳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혹성이 있다는 뜻인데 이는 천문우주학적
측면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다. 
    
과학적 논리를 빌어 기치를 세운 종교임에도 과학적 오류를 범하는 모순이지만, 여기에 가타부타 토를
다는 것은 타종교의 초월자를 의심하는 무신론자들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그들이 주장하는 초월자의 형상’으로 이해하고 수긍해야 한다. 왜냐하면 초월자에 대해 의심을 한다고 해서 교리에서 말하는 선善한 행동양식의 추구가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이나 영생, 인간으로서의 윤회 등의 궁극적인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참된 자기반성을 통해 올바르게 살아가는 과장 그 자체에 무게를 둬야함을 잘 알고 있다. 고로 자신과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배척하고 백안시 하지 말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된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지 귀 기울여 듣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용할 줄 아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이다.

 

※ 레포트 탈고 이후, 얼마전 국내를 뜨겁게 달구었던 ‘옥소리씨 간통 논란’에 대해 라엘이 국내의 간통죄 폐지, 옥소리씨 지지라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라엘은 평소에도 성인의 성욕은 밥 먹는 것과 같이 평범한 것인데 법과 사회인식 때문에 국가차원의 제제는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관심을 보인 네티즌이 국내 라엘리안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그들의 집회에 대해 조사를 해본 결과, 처녀들이 나체로 몸에 우유를 바르면서 집단 성행위를 가지는 등의 매우 문란한 집회가 주기적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현재 국내에선 소수종교단체로 분류되어 영향력과 규모가 미약한 수준이지만, 이후 규모가 커졌을 때 이들의 행위가 언론을 통해 대외에 알려지면 문제시 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주
1) 현재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카페는 다음(
http://cafe.daum.net/iloveufo)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의 회원 수는 약 3만 명가량으로 정식회원 외에 기타 UFO의 존재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2)
필자가 다니는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계통으로, 흡연 및 음주를 되도록 금하고 있다. 음주에 관해 가장 자주 인용되는 성경구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파멸시키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그 성전임이라" (고린도전서 3 :16-17) 그러나 이는 국내 개신교 중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 성향이 짙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해석이고, 100 여개가 넘는 개신교 종파마다 허용 범위 차이가 있다.

3) 라엘리안의 신도단계는 0부터 6까지, 총 7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0:훈련생(Trainee), 1:견습집사(Assistant Organizer), 2:집사(Organizer), 3:견습사제(Assistant Priest), 4:사제(Priest), 5:주교(Bishop), 6:선지자(Guide of Guides)의 체계이다. 지역
지도자는 견습사제부터 가능하므로, 인치는 작업은 주로 3단계 이상의 신도들이 맡는다.

4) 영국의 중세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베이컨(Roger Bacon, 1214~1294)은 화약제조법을 알고 있었으나, 교회로부터 마술사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 암호화하여 공식을 숨겼다. 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지동설을 옹호하다 종교재판을 받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예가 있다.

5) 세계일보, “또 누드 퍼포먼스 벌이는 라엘리안” 2007.05.15

6) 2007년 6월 13일, 서울 덕수궁 앞에서 ‘동물을 인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PETA)'에서 상추 잎으로 만든 비키니 차림으로 채식주의를 주장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또, 2005년 1월, 서울 명동에서 모피사용에 반대하는 알몸시위를 벌였던 미국 환경단체 회원들은 과다노출로 벌금 5만원을 냈다.
Posted by 결여
 

1. 「민중의 바다」가 써진 배경

  북한이 「꽃 파는 처녀」「어느 자위단원의 죽음」과 함께 북한문학의 최고로 꼽는 「민중의 바다」(원제 : 피바다)는 항일혁명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써진 소설이다. 민중들에게 혁명의식을 고취시키고 김일성 권력의 전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두고 쓰였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을 간과하고 읽는다면 대화와 문맥 속에 감추어진 주체사상 아래 이데올로기를 놓치기 쉽다. 고로 당시 북한 사회가 이끌고자 했던 문학예술의 진로와 뿌리내리고 있던 이데올로기의 이해가 선결되어야한다.

  「민중의 바다」가 개작되어 소설로 출간 된 시점은 1967년으로 김일성의 주도로 유일사상 체계 아래의 주체 문학이 북한의 지배적인 문예정책으로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특히 기존까지 북한 문학의 전통으로 평가되고 있던 카프를 평가절하하고 항일혁명문학을 그 유일한 혁명 전통으로 평가하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을 반대하는 일군의 문학가들에게 반당, 반종파 투쟁이란 형태의 비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김일성은 1967년에 들어 여러 연설에서 당시 북한 문학 분야에서 나타난 부르주아적이고 수정주의적인 요소를 비판하였다. 이는 첫째, 반당수정주의분자들의 사상여독을 청산하여 당의 유일사상 체계를 튼튼히 세우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었으며 둘째,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민중을 한데 묶어 당정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항일혁명문학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주로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항일혁명운동이 문학예술로 재창조 되었을 때, 북한 사람들이 더 깊숙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했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쉽사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과거였음을 감안하면 항일혁명문학이 중요한 인식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끔 만들 수 있었다.

  「민중의 바다」는 이런 배경에서 해석, 개작된 소설이다. 과거 항일혁명운동 시기에 창작된 연극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는데 이 무려에 발견된 텍스트인 「혈해지창」은 만주에서 제작된 여러 판본 중에서 가장 형태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작품들이다.1)

  「혈해지창」이나「민중의 바다」가 가지는 공통점은 유격 정찰원(조동춘)을 감추기 위해 일본군들에게 막내아들(을남이)을 희생시키면서도 끝까지 혁명완수에 충실한 어머니(순녀)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혈해지창」에서는 이 어머니가 중국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어, 조선과 중국 두 나라 민중들이 일본에 맞서 공통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면에 「민중의 바다」에서는 모두 조선 사람으로 되어있어 당시의 현실감을 떨어뜨리고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1960년대 전반기만 하더라도 민족적인 것을 강조하면서도 결코 민족주의로 빠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견지했던 반면,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자민족중심주의로 치닫는 주체사상체계 확립 이후의 전반적 분위기는 생각할 거리를 남겨두고 있다.

  당시 형성되어 있던 분위기란 민족적 심리와 기질을 민족적 성격으로 보려하는 경향에서 시작되는데, 역사적 전변 속에서 민족적인 것을 찾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이 시기에 들어 민족을 탈역사화 시키려는 경향과 맞물려 민족적인 강조 속에서 제반 민주주의의 약화 또는 결여로 이어지게 된다. 식민지 경험을 한 국가에서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자민족 중심주의의 유혹에서 북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2)

  흥미로운 점은 독일의 나치즘으로 나타난 파시스트 운동과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당시 독일의 총통 히틀러Hitler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들에게 만연한 패배주의, 지도자불신등을 타개할 방법으로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운 슬로건을 활용하였다.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3)이라는 유명한 연설에서 사상적인 영향을 크게 받은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을 비롯하여 신문, 연설 등에서 민중들에게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역설하며 자민족중심주의의 뿌리를 내렸다.

  이상과 같은 시각에 따라, 본고는 먼저 「민중의 바다」에서 나타난 정치 이데올로기를 살펴보고, 이 이데올로기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발생한 파시스트 운동들과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을 지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2. 「민중의 바다」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파시스트 운동의 비교


  가. 권력의 정통성 확보

  1967년 김일성의 지도하에 확립된 주체사상은 북한정권의 정통성 수립을 선결과제로 삼았다. 다른 공산주의의 지도자들은 장기간에 걸친 민족해방투쟁 혹은 게릴라 투쟁을 통하여 공산정권을 수립하여 스스로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의 만주 게릴라 조직인 ‘동북인민혁명군’으로서 활동하다가 내부반란으로 궤멸상태에 치닫자 시베리아로 건너가 소련 공산당의 일원이 되었다. 소련은 북한에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여 미국을 견제할 요량으로 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웠기 때문에 북한정권의 역사적 정통성 기반이 약했다.

  김일성은 뿌리를 튼튼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동북인민혁명군’ 시절 2군 3사단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자신의 사단의 이름을 ‘항일유격대’라 칭한 이때의 활약상을 부풀렸다. 북한의 모든 선전 책자에는 한결같이 항일유격대의 모습을 신격화된 군대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문학예술에서도 시도되었다.


   노인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조종의 산인 백두산위에 장수별이 떠서 영롱한 빛을 뿌린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금년 초범에 마침내 나라와 백성을 건질 조선군사가 일어났다오. 듣자니 그 군사를 항일유격대라고 부른다는데 아무튼 땅을 주름잡아 하루에 천리를 내달으며 왜놈들 베기를 삼대 베듯이 해서 원쑤의 주검이 낙엽 구을 듯이 한다고 소문이 자자합데다.”


  이외에도 작품 곳곳에서 ‘압록강줄기를 타고 넘나들며 원쑤에게 세찬 불벼락을 안기었다’, ‘땅속에 매복하고 있던 유격대가 솟구치더니 원쑤들의 전차들을 뒤집었다’ 등 북한문학 특유의 과장되고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여 신출귀몰한 군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김일성이 투쟁활동을 통해 지도자가 되었음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권력의 정통성을 세우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도는 조국광복회 10대강령을 혁명 기치로 삼은 데서도 드러난다.


   항일유격대는 조선혁명에 대한 새로운 웅대한 구상을 안고 백두산지구로 진출하였다. 조선혁명은 조선사람 자신의 손으로 수행해야 하며 또 능히 수행할 수 있다는 사상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조국광복회 10대강령과 창립선언에 접한 모든 조선 사람들은 감격에 목이 메었으며 남녀노소가 한결같이 그 새 노선을 관철하는데 떨쳐나갔다.


  위에서도 알 수 있듯 김일성이 직접 조국광복회를 조직하고, 10대강령을 직접 작성한 것인 양 묘사하였다. 그러나 일제시의 문서에 따르면 당시의 조국광복회는 북한의 김일성에 의하여 조직된 것이 아니라 3 ·1운동 이후 용맹을 떨친 오성환과 엄수명, 이상준 등 3인에 의해 발기되어 1936년 6월에 재만주 한인조국광복회 선언을 발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4)

  이와 같이 주체와 항일혁명운동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문학예술에 이토록 표현한 것은, 정치적 자주성의 정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김일성 중심으로 권력체제가 집결하길 기도했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이 이처럼 문학예술을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는데 사용했던 것은 신문을 제외한 TV · 라디오 매체의 보급률이 낮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진문물이 발달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두 독재자, 히틀러와 무솔리니Mussolini는 적극적으로 신문 · 라디오 · TV등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문학예술을 사용하여 민중을 계몽하는 데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대신 언론사를 휘어잡고 발달한 매체를 이용하여 정부 시책과 독재자들에 대한 지나친 찬양으로 일관되게끔 했다. 하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출신이었던 정치꾼들이 우상화될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불안했던 국가정세와 정치 세력의 불신, 기울어가는 가세 등 정치 · 경제적 상황 외에도 대중매체를 통한 현기증 나는 정치선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학예술과 매체를 대중봉기와 통치수단으로 삼은 공산정권이나, ‘민족지상’ ‘국가지상’을 내걸고 마치 집단 최면을 일으키듯 대중을 광기로 몰아넣은 파시즘이나, 전체주의 정권의 언론장악 논리와 방식은 대동소이했다.5)


  나. 적대적 대상과 속죄양

  역사적으로 통치자들은 민중의 민족의식을 자각시켜 일체감을 높이면서 그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시키는 방법으로, 민족의 공통된 적대적 대상을 설정해왔다. 그런 방식이 통치자들이 원하는 성과를 항상 보여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분오열된 민중들을 한 가지 정치체제 아래 끌어들이는데 유효했다. 김일성은 「민중의 바다」에서 민족의 적대적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민중들은 그들을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명시해두고 있다.  

  「민중의 바다」의 배경은 1930년대 일제 통치 아래 만주 연안으로, 당시 조선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쉴 새 없이 이주할 땅을 헤매며 끼니를 때우지도 못하고 농기구도 없이 땅을 일구는 비참한 생활을 해왔다. 게다가 세월이 지날수록 중국 사람들의 차별이 심해지고 농업개척의 여러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기에 일제의 탄압이 더해지자 조선인들의 곤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적대적 대상이 일본인으로 설정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굶주리고 병든 민중을 핍박하는 것은 일본군이었고, 이들에게 달라붙어 마을의 정보를 제공하여 일제통치에 이점을 제공하고 배불리고 등을 데우는 친일파는 가장 먼저 척결되어야 할 적이었다. 이들 무리에 대한 적대적 의식은 아래와 같이 표현된다.

 

  원남이는…(중략)…절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 우리가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려면 언제나 이 모양대로 지낼 수는 없어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저 왜놈들한테 얼마나 악착하게 짓밟혔는가를…그런데 그놈들은 점점 더 우리를 악착하게 짓밟으려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다가 죽어야 사람값에 갑니다. 사람답게 살자니 왜놈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장국은 초입에 잘 가꾸어진 몇 고랑의 담배 밭을 바라보니 기분이 흡족한지 허리까지 치는 담배 잎을 만져보고 두루 한 바퀴 돌더니 김이 묵은 것을 보자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여태 김을 묵혀 두었군. 자, 이것들을 어떻게 한다?”

   그는 당장에 그 누가 옆에 있으면 호령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둘러봐야 제 욕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더욱 화가 나는 듯 낯색이 표표해졌다.

   “빌어먹을 여편네 같으니라구, 굶어죽을 것을 거두어주었더니 배은망덕도 유만부동이지. 당장 주리를 틀어놓으리라.”

 

  위 대목에서 원남은 일본군이 민중들에게 저지른 악행을 얘기하고 그들에 대한 적대적 의식을 공고히 하여 왜 항일혁명운동이 행해져야 하는지 역설한다. 일본군의 무자비한 무력통치와 식민지건설에 대한 저항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데, 아래 글은 이런 와중에도 일제에 들러붙어 같은 동포를 부려먹고 자신의 잇속만을 생각하는 친일파를 같은 선상에 두어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중의 바다」에선 이외에도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광산부녀회장은 부르주아의 식구를 좋게 보자는 어머니의 말에 불만스러운 듯 잰 말투로 서슴없이 밀막아버렸다.

  “…(중략)…그렇다고 나도 그 여자를 두둔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화약이 굴속에 있고 그 여자가 그것을 알면서도 아직 고해바치지 않았다면 가난뱅이 딸이라는 제 처지를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중략)… 우리가 혁명을 하자면 지금 당장 싸울 생각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면 다 깨우쳐서 싸움에 나서게 해야 돼요. 그런데 그 여자는 아직 양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 않나요?”


  주목할 점은 어쩔 수 없이 빚값에 결혼한 귀순을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잘 입고 잘 사는 것들을 원쑤같이 취급하는 분위기이다. 자의와는 상관없이 자본가의 첩이 되는 것만으로도 죄악으로 논하고 있는 대목에서 부르조아 계급에 대한 적개심이 어느 정도인가 짐작케 한다. 우리는 여기서 김일성이 간접적으로 행한 비판을 통해 민족을 무력으로 탄압하는 일본군에 대한 적대적 의식에 동조하여 당을 지지하는 자들 외에도, 부르조아 사상을 지닌 자들을 반동으로 처리하여 숙청하고 반 부르주아적 사상을 지닌 사람들을 체제에 흡수하여 공산주의 기반을 다지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속죄양’을 만들어내 체제에 통합되고 남은 사람들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통합시키는 방법은 파시스트 체제 지배 방식에서 흔히 보이는 것 중에 하나이다. 대부분의 파시즘 체제는 공산주의나 독점자본 등에 대한 사회의 증오감을 불붙여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견인해 내는 메커니즘을 이용했다. 히틀러는 여기에 덧붙여 유럽사에 잠재해 있던 반유태주의를 활용하였다. 그는 새로운 인종학을 창안하여 유태인을 비아리안족으로 규정하고 조부모의 어느 한편이 유태인인 경우 유태인으로 간주하여 탄압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최초 나치즘을 열성적으로 지지한 중간 하층계급 -주로 소규모 자영 기업가, 기술공, 화이트칼라 노동자- 외에도 블루칼라 노동자 계급과 자유주의자 및 가톨릭 부르조아들을 성공적으로 편입시켜 체제의 안정감에 무게를 실었다.

  적대적 대상을 통해 민중을 하나로 뭉치고 속죄양을 만들어내 반대세력들을 쳐내면서 동시에 남은 사람들을 규합시키는 방법은 주체사상 아래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외부적으론 미국의 압력이 거세고, 내부적으론 김일성 자신의 1인 독재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더욱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항일혁명운동 시대를 통해 당시 조선인들을 핍박하는 일본군과 현재 압력을 가해오는 미국군을 적대적 대상으로 개념을 추가정립하고, 공산독재에 반하는 반당무리들을 숙청함으로써 김일성에게 권력을 집중코자했기 때문이다.


  다. 반대세력의 해결방식

  적대적 무리에게 핍박받던 어머니가 사상적으로 계몽되고, 급기야 무력시위에 몸을 바쳐 혁명을 완수하는 것이 진정한 혁명의 길임을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민중의 바다」의 주된 줄거리이다.

 

  어머니는 갑순이의 울먹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외면하였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듯이 말하였다.

  “나도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좋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너희들이 철없이 덤빈다고 대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악한 놈은 망한다고 했느니라. 왜놈들이 망하는 것은 정한 이치다.”

 
  이토록 일본군의 핍박 아래 겪어온 무수한 풍상과 참혹한 피의 체험 속에서 굳혀온 소극적인 생활의 신념을 확고히 하던 어머니도 유격대를 도와 혁명에 일조하면서 점점 계몽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이제야 남편을 더 깊이 이해한 것 같이 생각되었고 그만큼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중략)… 즉 슬픔 앞에 울고만 있을 수 없으며 천대와 굴욕을 참는 것이 곧 그것을 항거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사람들의 순결한 넋을 모욕하는 것임을 어머니는 깨닫는 것이었다.


  소극적인 자세를 일관하여 핍박을 외면해온 자세가 외압에 항거하여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모욕하는 것임을 깨닫는 장면은, 현실에 안주하여 혁명정신이 헤이 헤진 자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진정한 혁명의 길은 맞서 투쟁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폭력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적대적 세력에겐 폭력만이 해결책임을, 다시 말하자면 피는 피로 씻는 보복주의가 진리임을 제시하고 있다.


   땅! 땅! 땅!

   연거푸 복수 탄이 날아갔다. 남편의 이름으로! 을남이의 이름으로! 이 총을 남기고 죽은 조동춘 공작원의 이름으로! 별재노인의 이름으로! 경철이의 이름으로! 시월네의 이름으로! 그리고 억울하게 짓밟히고 학살당한 모든 조선 사람들의 이름으로, 피눈물과 한숨 속에 장사지낸 지난 청춘의 이름으로 어머니는 쏘고 또 쏘았다.


  악착같이 자신을 괴롭히고 동네민중들을 핍박하였던 일본군의 우두머리 호소가와에게 어머니가 분노의 총탄을 퍼부어 사살하는 장면은 폭력을 정당화하고 미화시켜 사뭇 비장미까지 흘러넘치는 듯하다. 결국에는 폭동을 통해 일본군을 비롯해 일제의 앞잡이로 나오는 친일파 변장국과 광주 사업가인 부르조아 강봉규까지 모두 처단하여 혁명의 기를 드높이며 글을 맺는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이 살길은 무력을 통한 혁명밖에 없음을 제시하며 당의 군국화 정책을 정당화 했다.

  이러한 인식은 파시스트 지배 체제 아래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다. 파시스트들은 반대자들을 설득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숙청시켰다.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당원들에게 지시하여 북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노동조합의 본거지 및 회관들을 파괴했으며, 급기야 반대세력인 개혁사회주의 의원 마테오티Matteotti를 납치, 살해하게 했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며칠 전에 마테오티는 의회에서 선거 기간에 자행된 파시스트들의 폭력을 목록으로 작성해 공개하면서 이를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6) 이 사건으로 인해 무솔리니는 자신의 정치생활에 위기를 맞았으나, 12만 6천명의 경무장한 파시스트 당원들을 이끌고 독재를 선포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했다.

  1933년에 히틀러 내각이 성립하자 비밀국가경찰(Geheime Staatspolizei;Gestapo)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테러행위와 강제수용 등 잔학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나치스체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게슈타포들이 1934년 한 달 동안 잡아들인 유태인은 천명에 달했다. 히틀러는 이런 식으로 현대국가사상 유례가 없는 개인에 대한 테러를 통해 권력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 그 가운데서도 인류역사상 최악의 집단적인 절멸계획이 등장했는데, 600만 유태인 독가스 학살이었다.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이 대규모 학살로 나치는, 이데올로기를 실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관료주의적 완벽성을 통해 파시즘의 전율할 만한 파괴성을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격한 지배자들이 폭력을 정당화하여 이루고자 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체제를 정립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는 반대파들을 공개적으로 숙청함으로써 독재를 선포하고자 하였다. 그야말로 모난 돌에게 정을 때림으로서 공포감을 조성시켜 반대파의 의견을 자연히 수그러들게 만드는 이른바 공포정치의 발현이었다. 둘째로, 군국화를 이룩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국들을 합병시키고자 하였다. 군수사업을 통한 군사력증강은 산업 활동에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하였기 때문에 침체된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 나아가 영토 확장을 통해 경제적 곤궁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 침공을 통해 인구과밀과 원유문제를 해결코자 했고, 히틀러는 피히테의 연설에서 말한바와 같이 독일 민족의 생활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종족을 추방하거나 노예화 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서 남한을 상대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과거의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전쟁에서 패하며 사라졌지만, 북한은 궁핍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파시스트 지배의 특성을 가진 모든 국가들이 그러했듯이, 그들의 반대세력을 처리하는 방식이 어떤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결  론


  파시즘을 포함하여 모든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것들은 사회의 모든 계급에 있어서 불만을 가진 자들, 안주할 곳이 없는 자들, 사회적으로 고립된 자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자들, 특히 핍박받고 소외당하는 자들에게 특히 매력을 준다.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 사회적 에서 실패하고 낙오된 자들에 의해 지지되어 진다. 특히 노동자, 농민 계급과 같은 하층사람들이야 말로 파시스트 운동의 핵이 되는 신봉자들이라 일컫는다.

  「민중의 바다」는 대다수가 농민으로 구성된 북한의 정치체계 속에, 민중들에게 확고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문학이라고 생각된다. 본론에서 논한바와 같이, 「민중의 바다」에는 첫째 김일성의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격화, 둘째 적대적 대상 및 속죄양 형성을 통해 되새기는 주적개념, 마지막으로 혁명에 진정으로 도달하는 길은 무력을 통한 것임을 명시하여 군국주의의 정당화가 모두 녹아들어 있는 주체사상의 정수이다.

  김일성은 공산주의운동의 다원화를 인정한 모스크바선언(1957) 이후, 마르크스 · 레닌주의에서 변질된 1인독재를 합리화하는 통치논리를 펼쳐 주체사상을 확립했다. 주체사상은 최초 순수한 공산주의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어 동시대의 공산주의국가들로부터 별다른 인정과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극단적인 혁명이론과 전략전술은 파시즘 · 나치즘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이러한 주체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시즘을 비롯한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1969년 주체사상이 성립되었을 당시의 출간된 문학예술들은 북한문학의 근원이오, 현재까지 북한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출발지이다. 파시스트 체제 지배 방식을 거친 다른 나라의 이데올로기와 당시 북한문학예술에서 나타난 주체사상의 관계를 심도 있는 접근 아래 분석된다면, 현재까지 북한을 둘러싼 껍데기들을 깨뜨리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


※ 주
1) 김재용, 「북한문학과 민족문제의 인식」,『분단구조와 북한문학』p. 91 
2) 위의 글. p. 91 
3)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는 1807년 베를린 강당에서 이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독일인은 모든 종족들 중에서 가장 우월한 종족이기 때문에 혈통이 순수할 것과 독일 민족의 생활권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종족을 추방하거나 노예화 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를 지니고 있는 것, 마지막으로 이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그리고 스스로 정당화 된 힘을 사용하여 독일적인 평화를 성취 할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4) 한국자유총연맹, 「북한 주체사상의 본질과 실체」 p.101
5) 경향신문, 「매스미디어와 권력」 
6) Christopher Duggan, 「A Concise History Of Italy」, 김정하역, 개마고원, 2001


■ 참고문헌

1. 김종회, 「북한 문학의 이해」, 청동거울, 1999
2. 김재용, 「북한 문학의 역사적 이해」, 문학과지성사, 1994
3
. 김중하, 「북한 문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 국학자료원, 2005
4. 김재용, 「분단구조와 북한문학」, 소명, 2000
5. 한국자유총연맹, 「북한 주체사상의 본질과 실체」, 한국자유총연맹, 1989
6. Claude David, 「Hitler et Nazisme」, 정성진역, 탐구당, 1983
7. Christopher Duggan, 「A Concise History Of Italy」, 김정하역, 개마고원, 2001
8. Timothy W. Mason, Sozialpolitik im Dritten Reich : Arbeiterklasse und Volksgemeinschaft 
   김학이역, 한울아카데미, 2000
9. 조도제, 「나치즘의 政治 이데올로기 分析 」, 경남대학교 법정대학 법정논집 제2권, 1989
10. 김성건,「파시즘(Fascism) 출현의 사회적 배경」, 청주여자대학 논문집 제14권, 1984
11. 이이화, 「만주지역 항일 유격대 활동과 북한의 항일정신」, 민족통일학회
12. 경향신문, 「매스미디어와 권력」


Posted by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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